베트남여행하노이

하노이

하노이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기원전 3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최초의 주거지 중의 하나로 알려진 것은 기원전 200년 경의 꼴로아 성채이다.

하노이가 베트남의 중심 도시가 된 것은 7세기 무렵의 일이다. 당나라 시대에는 윈난남중국해를 연결하는 교역로 상에 위치하여 하노이에 설치된 안남도호부는 당에 의한 남방 지배의 거점이 되었다. 당나라 말기에 새로운 남방 교역로의 개척으로 안남도호부의 중요성은 유명무실해졌고, 홍 강이 당시에 새로 개척된 해상교역로의 유효범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점차 중요성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11세기에 리 왕조는 이 땅을 수도로 삼고 농업 지대를 통치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리 왕조의 성립 이후, 1802년응우옌 왕조가 성립되면서 후에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왕도로서 번영하였다. 그 후 탕롱(베트남어: Thăng Long昇龍), 통킹 등으로 불리다가 1831년에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 1873년에는 프랑스에 점령되어 1887년 이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중심지가 되었다.

1940년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진주하게 되면서 하노이도 사실상 일본 점령 하에 놓이지만 1945년 8월에 일본군이 항복함으로써 일본 점령이 끝난다. 1945년 9월 2일에 하노이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북 베트남)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 후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독립을 위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나면서 하노이도 전장이 되어 한때 프랑스군이 점령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면서 하노이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다리나 도로 등의 교통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이 미군의 집중적인 폭격을 받았다. 미국이 철수하고 1976년에 남북 베트남이 통일됨으로써 하노이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하여 하노이의 전체 면적은 29개 구에 334,470 헥타아르로 늘어났으며[2] , 인구는 6,232,940명이 되었다. [2]

2006년 11월 18일부터 이틀간 이곳 하노이에서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2008년 5월 29일, 하떠이 성, 빈푹 성, 멜린 현, 호아빈 성의 르엉손 현 4개 코뮌이 하노이 광역시로 2008년 8월 1일부로 편입되는 것이 결정되었다.[3]

2010년에는 1010년리 태조가 하노이 천도를 한 1000주년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양한 기념 행사가 열렸다. 같은 해 10월 10일에 군사 퍼레이드도 진행되었다.

2019년아시안 게임의 개최지로 예정되었지만, 경제적 이유로 개최를 포기했다.

하노이는 최근 급격한 건축붐이 일고 있다. 신도시 지역에 툭 튀어나온 마천루는 도시 풍경을 바꿔 놓았고, 오래된 도시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스카이라인을 만들어가고 있다. 2015년에, 엠포리스는 하노이를 100m 이상의 마천루를 가진 세계 39위의 도시로 선정했다. 그 2개의 높은 빌딩은 하노이 랜드마크 72 타워(336m, 베트남에서 가장 높고, 동남아에서는 말레이지아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와 롯데센터 하노이(272m,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Close
Close